일본의 재택진료와 방문진료

 

일본의 재택진료와 방문진료는 고령화가 심화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점진적으로 확립되어 온 제도적 의료 형태이다. 병원에 직접 내원하기 어려운 고령자, 만성질환자, 혹은 말기환자들을 대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지역 내 의료기관과 요양기관, 약국, 지방자치단체가 긴밀히 연계하여 운영된다. 일본 정부는 이를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의 핵심 축으로 설정하고, 병원 중심이 아닌 ‘삶의 터전’ 중심의 돌봄과 진료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재택진료는 환자가 자신의 집에서 의사의 진료를 정기적으로 받는 시스템이다. 일반적으로는 '가정의' 또는 '방문진료 전문의'가 정해진 주기마다 환자의 집을 방문하여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진료를 수행한다. 정기 진료 외에도 급성 증상이나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는 24시간 대응체계를 통해 필요 시 응급 출동도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재택진료는 단지 병을 치료하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고, 고령자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생활환경을 평가하며, 필요 시 재활치료나 간호사, 요양보호사의 연계를 이끌어내는 포괄적 관리의 개념을 포함한다.

방문진료는 주로 재택진료보다 더 적극적인 형태로 제공되는 서비스로, 특히 말기 암환자나 중증 만성질환자,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시행된다. 일본에서는 의료기관이 직접 환자의 집으로 의료진을 파견하여 혈압, 혈당 측정, 혈액검사, 심전도, 초음파 등 간단한 검사를 실시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엔 경관영양, 도뇨관 삽입, 수액 주사, 상처 드레싱과 같은 치료도 집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활동은 간호사, 물리치료사, 방문약사 등의 협업 하에 이루어지며, 의료기관은 전자기록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추적한다.

약의 조제 및 전달 방식 또한 재택진료 시스템에 맞춰 정비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방문약국 서비스(在宅薬剤管理指導)'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약사가 환자의 집을 직접 방문하여 약을 전달하고 복약지도를 하는 서비스이다. 환자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의사가 전자처방을 통해 처방전을 약국으로 전송하면, 약사는 이를 바탕으로 약을 조제한 후 환자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약사는 단순히 약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환자의 복약 순응도 확인, 부작용 여부 점검, 약물 보관 상태 확인, 다약제 중복 점검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서비스는 국민건강보험 체계 내에서 급여 항목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환자 본인의 경제적 부담도 비교적 낮다.

이러한 방문약사 제도는 특히 고령자 다약제 복용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약사는 환자의 병력, 생활습관, 식사 패턴, 인지 기능까지 고려하여 복약지도를 수행한다. 일본은 이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가정방문약국’을 일정 수 이상 지역 내에 지정하고 있으며, 방문약사가 건강관리팀의 일원으로서 의사, 간호사와 함께 회진에 참여하기도 한다.

일본의 재택진료와 방문진료는 단지 의료 서비스의 '형태'를 바꾼 것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을 병원이 아닌 집에서 맞이하고자 하는 국민적 가치관 변화에 기반한 결과이기도 하다. 말기환자의 경우 재택호스피스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병원에서 임종하는 비율이 점점 줄고 있다는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가 역시 이를 정책적으로 유도하고 있으며, 병상 감축 정책과 함께 지역사회 중심의 재택 의료 인프라를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사례는 한국에서도 고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매우 중요한 참고 모델이 되고 있다. 다만 한국은 아직 방문진료와 방문약사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정착되지 않았으며, 병원 중심 구조가 여전히 강하다. 따라서 일본처럼 재택진료와 방문약제 서비스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 정비, 인력 재배치, 수가 보장, ICT 기반 환자 정보 연계 시스템 구축 등 다방면에서의 준비가 필요하다. 일본의 경험은 결국, 고령화 사회에서 의료란 단지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자신의 일상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며 생의 마지막까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구조여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