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인간이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가장 정밀한 감각 기관이다. 그중에서도 시신경은 망막에서 받아들인 빛의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핵심 통로로, 이 작은 구조가 무너지면 시야는 점차 좁아지며 마침내 실명에 이르게 된다. 바로 이처럼 시신경이 서서히 파괴되는 병이 녹내장이다. 문제는 이 병이 오랜 시간 아무런 증상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녹내장은 흔히 ‘조용한 시력의 도둑’이라 불리며, 많은 사람들이 병이 꽤 진행된 뒤에야 인지하게 된다.
녹내장은 단순히 하나의 원인에 의해 발병하지 않는다. 그 발생은 복합적이며, 안압, 혈류, 유전, 환경적 요인이 서로 얽히고설켜 시신경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발병 원인은 안압 상승이다. 안구 내부에는 방수라는 액체가 순환하며 안압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그러나 방수가 정상적으로 배출되지 않거나 생성량에 비해 배출이 부족할 경우 안압이 높아지게 되고, 이는 시신경에 기계적 압박을 가하며 손상을 유발한다. 하지만 모든 녹내장 환자가 높은 안압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인에게 흔한 정상안압 녹내장은 안압이 정상 범위임에도 시신경이 손상되는 경우로, 이 경우 혈류 장애나 미세혈관의 순환 저하, 산화 스트레스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녹내장이 유전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가족 중에 녹내장 환자가 있다면 발병 위험은 일반인보다 몇 배나 높아진다. 실제로 특정 유전자, 예컨대 MYOC, OPTN, WDR36 유전자에 변이가 있을 경우 시신경 보호 기능이 약화되거나 안압 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러한 유전적 배경은 개인이 녹내장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되며,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은 보다 일찍, 더 자주 안과 검진을 받는 것이 권장된다.
그러나 유전적 요인만이 전부는 아니다. 후천적으로 획득되는 다양한 위험 인자들이 녹내장의 발병을 촉진한다. 대표적으로 고령, 당뇨병, 고혈압, 심혈관 질환, 저혈압, 특히 야간 저혈압이 시신경의 허혈을 유발하여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근시는 안구 구조의 변형으로 인해 시신경이 더 취약해질 수 있으며, 스테로이드의 장기 사용 역시 안압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흡연, 음주, 수면 무호흡증과 같은 생활 습관 역시 간접적으로 녹내장의 진행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다각적인 원인을 가진 녹내장을 완전히 예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위험 인자를 조절하고 시신경을 보호하는 방식의 생활습관은 분명 질환의 발현과 진행을 억제하는 데 의미 있는 효과를 보일 수 있다. 가장 기본이자 핵심은 정기적인 안과 검진이다. 녹내장은 초기에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에, 주기적인 안압 측정과 시신경 검사는 조기 진단을 가능케 하고, 치료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
생활 속에서의 노력도 중요하다. 유산소 운동은 시신경으로 가는 혈류를 개선하고 안압을 일정 부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규칙적으로 걷거나 자전거 타기, 가벼운 조깅을 지속하면 자율신경계의 기능도 향상되어 시신경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는 경우 철저한 질환 관리를 통해 시신경 손상을 줄일 수 있으며, 특히 혈압약 복용 시 야간의 과도한 저혈압을 피하도록 의료진과 상담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흡연은 산화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음주는 일시적인 안압 상승을 유발하므로 절제해야 한다.
녹내장을 예방하고 시신경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영양제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오메가-3 지방산이다. 오메가-3는 혈관을 이완시키고 염증을 줄이는 작용을 통해 시신경의 혈류를 개선하며, 일부 연구에서는 안압을 낮추는 효과도 보고되었다. 또한 비타민 C, E, A와 같은 항산화 비타민은 시신경을 둘러싼 조직을 산화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하며, 셀레늄 역시 세포 보호 작용을 가진 미량 원소로 관심을 받고 있다. 코엔자임 Q10은 시신경 세포의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유지시키고 자가사멸을 억제함으로써, 시신경 보호를 위한 주요한 보조 인자로 작용한다. 최근에는 루테인과 제아잔틴과 같은 카로티노이드가 시세포의 손상을 막고 시야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다.
결국 녹내장은 단일한 질환이 아닌, 다양한 기전과 원인이 작용하는 복합적인 질병이다. 그렇기에 정답도 하나일 수 없다. 그러나 공통된 교훈은 분명하다. 조기에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관리하며, 나의 생활습관 하나하나를 시신경의 입장에서 다시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녹내장이라는 조용한 침입자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이다. 눈은 한 번 잃으면 되돌릴 수 없는 소중한 감각이다. 그 가치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눈을 위한 삶의 방식을 다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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