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국채는 세계 경제의 기둥과도 같다. 각국의 중앙은행과 금융기관, 보험사, 연기금들이 미국 국채를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보유하며 신용과 유동성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이 거대한 기둥이 휘청였던 시기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세계 경제는 격렬한 진동을 겪었고, 복잡하게 얽힌 금융시장은 위험한 균열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시점은 1981년이다. 이 시기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15.84%**까지 치솟으며,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곧 국채 가격이 그만큼 극심하게 하락했다는 뜻이다. 폴 볼커 연준 의장이 이끄는 급격한 금리 인상 정책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를 강타한 고물가와 스태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그 여파로 미국은 **이중 침체(double-dip recession)**를 겪었고, 실업률은 10%에 근접했으며, 소비심리와 기업 투자 모두 위축되었다. 세계 각국도 미국 금리 급등의 충격을 받아 통화가치 하락과 자본 유출을 겪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시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이다. 당시 국채 가격 자체는 급락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위기 이후에 안전자산으로 급등했지만, 위기 직전인 2007년~2008년 사이에 단기채 금리는 하락하는 반면, 장기채 금리는 상대적으로 덜 하락하며 **수익률 곡선이 평탄화(flattening)**되었다. 이는 신용경색과 파생상품 붕괴의 전조였고, 결국 **CDO(부채담보부증권)**나 MBS(주택담보증권) 같은 파생상품 구조물이 핵심적으로 무너졌다. 당시 AIG와 같은 보험사는 파생상품을 과도하게 발행해 두었고, 국채마저 가격 변동성이 커지자 마진콜로 인해 유동성이 말라붙었다.
더 최근의 사례는 2022년~2023년의 금리 인상기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2022년 한 해에만 기준금리를 4.25%p나 올렸고, 이에 따라 10년물 미국 국채 수익률은 2023년 10월에 **4.99%**까지 상승했다. 이는 2007년 이후 최고치였으며, 그만큼 국채 가격은 크게 하락했다. 이 시기 미국의 지역은행 중 하나였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은 보유하고 있던 장기 국채의 시장 가치 하락으로 대규모 평가손실을 입었고, 이를 메우기 위해 자산을 매각하려다 뱅크런이 발생했다. 이는 명백히 채권 가격 하락 → 자산 평가손실 → 유동성 부족 → 도미노 붕괴의 경로였다.
채권 가격이 극단적으로 하락할 경우, 파생상품 시장 전반이 위험해질 수 있다. 특히 IRS(금리 스왑), 국채선물, 옵션, 레버리지 ETF 등은 기초자산인 국채 수익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들 상품은 대부분 마진(Margin)과 증거금 기반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금리 급등 혹은 가격 하락은 **강제청산(Liquidation)**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채권 금리가 하루 50bp 이상 급등하면 국채선물 가격은 수십 베이시스포인트 하락하고, 이에 따라 선물 포지션을 가진 투자자나 헤지펀드는 증거금 부족으로 포지션을 강제 청산당할 수 있다. 이는 연쇄적인 매도세로 이어져 시장 전체의 변동성을 폭증시킨다.
채권 시장의 붕괴는 단순히 ‘채권 투자자가 손해를 본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곧 정부의 신용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신호이자, 세계 금융구조의 뿌리가 뒤흔들리는 사건이다. 주요 은행들과 보험사, 중앙은행들이 미국 국채를 기초자산으로 삼아 다양한 금융상품을 설계하고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왔기에, 이 근간이 붕괴될 경우 그 위에 쌓인 레버리지 구조물들도 연쇄적으로 붕괴될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위험한 점은, 미국 국채는 **담보(콜래터럴)**로도 쓰인다는 점이다. 레포 시장(repurchasing agreement)이나 파생상품 거래에서 미국 국채는 가장 흔히 사용되는 담보 수단인데, 이 담보가 시장가치 기준으로 하락하게 되면, 담보 부족(Margin shortfall) 문제가 발생하여 거래 상대방이 담보 보충을 요구하고, 보충하지 못할 경우 거래 자체가 청산된다. 이 과정은 금융기관 간 신뢰 붕괴와 연쇄 부도를 야기할 수 있으며,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같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국 미국 채권 가격의 붕괴는 단순한 자산의 가격 조정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심장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상태와 같다. 세계가 그 박동에 맞추어 움직이는 한, 채권의 이상은 세계 경제 전체의 불균형으로 즉각 연결될 수밖에 없다. 미국 채권은 언제나 '비싸도 사야 하는 자산'이었기에, '싸졌다는 사실' 자체가 곧 위기의 예고편일 수 있다. 이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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