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사람들은 보통 전쟁, 침략, 또는 대규모 테러와 같은 외부의 충격을 먼저 떠올린다. 강한 나라가 망하려면 반드시 강한 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학자 닐 퍼거슨(Niall Ferguson)은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의 통찰에 따르면, 제국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무너진다. 재정이 바닥나고, 정치가 마비되며, 국민의 신뢰가 깨질 때 제국은 서서히, 그러나 피할 수 없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이 개념은 지금 ‘퍼거슨의 법칙’이라 불리며, 현대 세계를 바라보는 중요한 틀 중 하나가 되었다. 퍼거슨은 “제국은 파산하지 않는다. 단지 서서히 약해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수많은 역사적 제국의 공통된 패턴임을 보여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로마 제국이다. 로마는 결국 게르만족의 침략으로 멸망했지만, 퍼거슨의 시각에서 보면 외부 침략은 단지 마지막 촉발 요인에 불과했다. 이미 로마는 내부에서 붕괴 중이었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국고는 바닥났고, 세금은 증가했지만 그것은 주로 중산층과 하층민에게만 적용됐다. 부유층은 면세 혜택을 받으며 국방비는 줄고, 군인들에게 줄 급여조차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 되었다. 민심은 떠났고, 정치 체계는 혼란에 빠졌다. 이 모든 상황은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위기의 결과였다. 결국 게르만족의 침입은 붕괴를 가속화한 계기였을 뿐이다.
프랑스 혁명 전의 구체제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루이 16세의 왕실은 사치와 무능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샀고, 프랑스는 미국 독립전쟁에 개입하며 국채를 급격히 늘렸다. 그러나 정작 그 재정을 메우는 방식은 극도로 불공정했다. 귀족과 성직자는 세금을 내지 않고, 평민만이 부당한 조세를 감당해야 했다. 국가는 점점 더 많은 돈을 빌려 쓰며 파산으로 향해갔고, 결국 평민들은 폭발했다.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은 프랑스가 무너진 상징적인 사건이었지만, 그 이전에 프랑스는 이미 제도로서 실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지금의 미국은 어떠한가?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다. 군사력, 달러 패권, 기술력, 글로벌 기업들의 중심지라는 점에서 압도적인 힘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퍼거슨의 법칙에 따라 내부의 구조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속은 점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재정의 위기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이미 34조 달러를 넘었고, 연간 재정적자는 수천억 달러에 달한다. 문제는 이 부채가 점점 더 빨리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금리가 올라가면서 이자비용만으로도 1년에 1조 달러를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국방비, 사회보장비, 복지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맞춰 세입을 늘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적으로 세금 인상은 금기어에 가깝고, 구조개혁은 항상 표를 잃는 선택이다. 결국 미국은 당장 눈앞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찍고, 더 많은 부채를 끌어오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여기에 정치적 분열은 그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지금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의 극단적인 대립 속에 있다. 어떤 이슈도 쉽게 합의되지 않는다. 부채한도 협상은 늘 위기 끝에 간신히 타결되고, 예산안은 자주 미뤄지거나 셧다운 위기로 치닫는다. 국민들은 점점 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고, 양극화된 언론은 진실보다 진영 논리를 강화시키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로마 말기의 귀족 내분과, 프랑스 혁명 전의 귀족-평민 갈등과 닮아 있다. 차이점은, 현대 미국은 ‘선거’라는 장치를 통해 그것을 합법적으로 풀고 있지만, 그 선거조차 갈수록 신뢰를 잃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 불안정성도 심각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강경 관세 정책은 일부 산업을 보호했을지 몰라도, 전반적인 공급망 불안을 키웠고, 세계 각국과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무역 파트너들의 반발과 글로벌 투자 불확실성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고금리, 고비용 구조가 겹치며 미국 증시는 큰 폭의 변동성을 겪고 있고, 투자자들은 점점 미국 국채조차 ‘무조건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의심으로 번질 수 있는 신호다.
닐 퍼거슨은 제국의 몰락은 ‘천천히 그러다 한순간에’ 온다고 했다. 우리가 자주 놓치는 것은, 그 몰락이 외부의 침략으로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부에서 재정이, 정치가, 사회적 신뢰가 이미 무너져 있었기에, 제국은 작은 충격 하나에도 거대한 구조물을 잃듯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그런 경고음이 점점 커지고 있는 시점에 서 있다. 국력이 가장 강할 때 오히려 가장 취약해질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이 미국 앞에도 펼쳐지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흐름을 바꾸지 않는다면, 퍼거슨이 말했던 것처럼, 미국 역시 언젠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제국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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