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국제 금시장은 역사의 또 하나의 꼭짓점을 찍었다. 온스당 3,357.40달러, 사상 최고가. 단지 숫자의 기록을 넘어, 이 금값은 지금의 세계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그리고 그 속에서 투자자들이 어디로 도피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단기적인 투기 수요로 설명되기엔 금값 상승의 배경은 깊고 구조적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의 금값 급등 현상이 어떠한 요인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유사한 사례가 역사적으로 몇 차례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금의 본질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금은 수익을 창출하지 않지만, 그 누구도 부도를 낼 수 없는 ‘무위험 자산’이다. 화폐가 불안할 때, 증시가 흔들릴 때, 채권의 실질 수익률이 낮을 때, 금은 다시금 빛을 발한다. 그리고 지금은 바로 그 세 가지 조건이 모두 겹친 시점이다.
가장 먼저 주목할 만한 요인은 중국의 금 보유 확대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약 700톤에 달하는 금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수입되었으며, 중국 인민은행은 외환보유고에서 금의 비중을 8%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이는 달러 중심의 금융 질서를 향한 구조적 도전이기도 하다. 특히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와중에 중국은 미국 국채를 줄이고 금을 매입함으로써, 자산의 ‘비달러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금은 단지 안전 자산일 뿐 아니라, 전략 자산으로서의 위상도 다시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든 보호무역주의는 세계 무역 시스템의 긴장을 불러오고 있다. 반도체, 희귀금속, 의약품에 대한 수입 통제를 공언한 미국은 각국의 공급망 전략을 재정비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는 불확실성을 자산 시장 전반에 전파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지정학적 불안이 커질수록, 금은 투자자들의 피난처가 되어간다.
여기에 금리와 달러의 방향성도 결정적이다. 미국은 2025년 중반을 향해가며 기준금리 인하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높은 금리에 지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완화로의 전환이 예고되면서, 달러는 최근 3년 중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고, 이는 비달러 국가 투자자들에게 금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자 수익이 없는 금은 금리가 낮아질수록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게 되며, 수요는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이러한 흐름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왔다. 첫 번째 급등 사례는 1979~1980년의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였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시기, 이란 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중동 정세의 혼란은 투자자들을 금으로 몰아넣었다. 그 결과, 1980년 1월 금값은 온스당 850달러까지 치솟았다.
두 번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미국 금융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내몰리며, 신용시장은 마비되었다. 이때도 금은 그 대안으로 선택받았다. 금 가격은 2008년 이후 3년간 꾸준히 상승했고, 2011년 9월에는 온스당 1,920달러를 기록했다.
세 번째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다. 불확실성의 끝에서 중앙은행들은 역사적인 유동성 공급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화폐가치에 대한 신뢰는 급격히 흔들렸다. 사람들은 금을 다시 찾았고, 금값은 2020년 8월 온스당 2,070달러까지 상승했다.
이러한 흐름을 놓고 보면, 금값의 폭등은 단순히 일시적인 투기적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세계 질서의 변곡점마다 반복되어 온 ‘구조적 반응’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의 금값 급등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으며, 글로벌 자본은 지금 ‘위험 자산 회피’라는 집단적 본능에 따라 다시금 금으로 향하고 있다.
결국 금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금값이 높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투자자들이 다른 무엇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온스당 3,357달러라는 숫자는 단순한 금의 가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전환의 시대, 그 한가운데서 투자자들이 내리는 가장 보수적이고 본능적인 선택의 무게를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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